💡 Insight

(김목사는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잃어버린 '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임을 설명한다. 그는 역사적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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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역할과 물질주의의 한계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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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와 대화 영이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후에 김목사가 말을 이었다.

「자본주의 시대, 물질 중심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영'이라고 하는 반쪽을 잃어버렸지요. 모든 것들을 물질적인 기준, 돈의 기준으로 사는 데에 익숙해버린 것이지요. 교회 안에도 오직 물질적인 기준에 근거한 용어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영'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합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기록되었지요. 하나님의 본질이 물질이 아니라 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뿐 아니지요. 사람에게도 영이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몸 안에 영을 불어 넣었지요. 성경에서 '영'이란 단어는 동시에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 말로 '영'은 '루아흐'라고 발음하는데 이 단어는 동시에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신약 그리스 말로는 영을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 역시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생각하면서 영을 이해해보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것 참 재미있습니다. 바람을 통해서 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영'도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옆에 앉아있던 박집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보면 어디든지 자유자제로 드나듭니다. 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한계를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말이지요. 2000년 전에 예루살렘 땅에서 역사했던 하나님의 영이 오늘 지금도 역사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지금 중국 땅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이 동시에 이곳에서도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언어학자 소쉬르의 '공시'와 '통시'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소쉬르는 언어라는 것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공간을 초월하는 공시적(synchronic)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통시적(diachronic)이지요.」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영철 형제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통시적 특징과 공시적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기준에 익숙한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영'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말해야겠지요. 다른 말로하면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잣대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문제는 알 수 없는 '영'이란 것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큰 돛을 단 엄청 큰 배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아무도 배 스스로 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람의 힘에 의해서 달리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과 영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이란 것이 사람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목사님 그러면 영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무슨 생각에선지 박집사가 되물었다.

「아닙니다. 크게 보면 인류 역사의 흐름에도 영의 작용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영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철학과 다른 하나는 오직 물질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과 같은 철학자는 역사의 중심에는 '영(geist)'가 있다고 보았지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영'과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헤겔은 한 시대를 이끄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힘에 있다고 본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시대정신(Zeitge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사를 보는 다른 시각은 칼 맑스의 주장처럼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는 유물론이지요. '영' '정신'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물질, 돈만이 인류 역사를 주도해온 힘이라는 것이지요. 가진 자 부르주아와 못가진자 프롤레타리아의 긴장이 인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랍니다. 종교와 같은 정신적인 것들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가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피지배 계급인 프롤레타리아에게 종교는 아편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상 천국은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산계급의 혁명 운동을 통해서 쟁취된다고 가르친 것이지요. 이런 역사관에 도취된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이 피를 뿌리면서 소련, 중국, 북한 등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공산주의 국가들이 다시 무너져 버리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만 가지고는 이상적인 인류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증거이겠지요.」

「목사님, 한국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네요.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지요. 물질적으로 볼 때 생활수준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생활수준은 좋아지긴 했지만 정신 상태는 여전히 구태의연했지요. 그래서 정신 상태를 개혁하기 위해서 새마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돈이나 물질만 가지고 좋은 사람, 좋은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증거이겠지요. 마음이 새롭게 변해야 되겠지요.」 박집사의 말이었다.

「맞습니다. 집사님. 사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정신 즉 '영'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지요. 요한삼서 1장 2절을 보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란 말씀이 있지요. 순서로 보면 크리스천에게 첫 번 관심사는 반드시 '영혼'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혼도 잘되고 하는 모든 일도 잘되고 몸도 건강한 것, 이 세 가지가 잘되는 것을 조목사님은 "삼박자축복"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벌써 10시 30분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김목사가 일어나자 모두들 따라 일어났다. 가장 어린 영철형제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던 것들을 모아서 트레이에 담은 후에 쓰레기통에 쏟아 부었다. 맥도날드 문을 나서자 이월의 신선한 겨울공기가 대화로 달아올랐던 얼굴을 식혀주었다.